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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죽은 것 같습니다.
저 아래에 보이는 당신의 시체가 확인 사살을 시켜주네요.
이런 식으로 인생이 끝날 줄이야.
이제것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번에 무너진 기분입니다. 너무도 허무해.
당신의 시신을 둘러싼 이들의 반응이 그리 슬퍼보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입니다.
희대의 폭군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참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어요.
세상 무슨 죽음이 갑작스럽지 않겠냐만은, 아직 살 날이 조금이라도 남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요.
지금어떤 감정이 드나요?

정말 허무합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런저런 고민이 들 무렵,
당신의 앞에 검은 천자락이 스치고 귓가에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는, 온몸이 검은 색으로 도배된, 당신의 호위 기사가 보입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나를 버리고 가더니, 이젠 저승사자 일을 하고 있다?


어디, 데려가봐라. 이번엔 두고 가지않을 자신이 있는지.

....이번엔,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조금 걸었을까, 잠시 멈춘 카론이 손을 한 번 휘젓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나무문은 당신이 살았던 궁전의 입구와 비슷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면 정말 이승과는 단절되겠지요.


끽해봐야 지옥이지 않겠느냐?
(어쩐지 자조적인 미소를 띄우며 웃었다.)

지옥같은 것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문 안쪽에서는 향긋한 꽃내음이 납니다.
어쩐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군요.


...스스로 그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못 박아두신 게 아닙니까.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하더니, 먼저 문 안으로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너머로 발을 내딛으면,
그곳은 꽃밭입니다.
가증스럽게도. 어울리지 않게도.
[능소화 꽃밭]
문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능소화로 뒤덮인 들판을 마주합니다.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버릴 만큼 향기롭고 황홀한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꽃잎이 흩날리는 광경이 예사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꽃밭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사라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다니.


...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꽃밭을 뛰노는 아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저 아이들의 죽음에도 당신이 연관 되어 있겠지.)

능소화가 가득 피어있는 이 장소는 하늘이 푸르르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하늘의 푸르름을 본 적이나 있었나요.
암흑에만 눈을 고정한 당신은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은 느린 걸음의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듣기 싫어도 귀에 와 꽂힙니다.
즐거운 아이들의 노랫소리입니다. 가사까지 확실히 들려오네요.

소화야, 소화야, 그 사랑은 믿지 말어라
다른 사람의 입으로 해쳐질 감정은 믿지를 마라
소화야, 그 사랑에 빠지지 말아라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널 아프게 하는 감정은 빠지지 마라
소화야, 소화야, 사랑이 너를 망친다
소화야, 결국 네가 담장 아래를 택했구나
그곳에 묻히기를 택했구나
저승 가는 길목에서라도 임을 만나고자
서리도 이슬도 전부 감당코자
[지능]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2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문득 이 노래의 내용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능소화 꽃의 전설이랬던가요.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어 [교육] 판정

기준치: | 80/40/16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참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기다리는 일은 쓸모없는 짓이야.

(걸음을 멈추지 않다가, 생전이었다면 결코 물어보지 않았을 한마디를 꺼내었다)
....기다리셨습니까.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일이라 느꼈다. 기다렸으면 어쩔 것인가. 안 기다렸으면 또 어쩔 것인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을 본 채 발걸음을 옮겼다)

(허무한 웃음을 흘렀다.) 영원한 이별이라면, 헤어지기 전에 꼭 듣고싶다.
왜 주군을 떠나서 혼자 죽어버린건지.

긴 이야기입니다.


지금 하기에는 불필요한 이야기지만, 저승길이 끝나기 전에는 모두 말해 드리겠습니다.

계속 안내해.
그렇게 말없이 조금 더 걷다 보면, 작은 정자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우물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네요.

날씨도 좋고, 이 저승사자는 채근하는 법도 없으니, 쉬었다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죽어서야 행복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곁에서, 당신이 휴식을 취할 수나 있을까요?

쉬어가시겠습니까.






... ....
아닙니다. (제 다리 위에 놓인 손이 주먹을 쥔 듯하다)
그런 생각은, 꿈에서라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어쩐지 조금 안심된 미소를 띄웠다가 금세 지웠다.)

그런데 그 때, 발 끝을 향했던 당신의 시선 끝에 무언가 걸린 듯합니다.

[관찰]판정 가능합니다.

기준치: | 75/37/15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조금 낡은 듯한 새까만 표지에, 저건... 책자입니다.
정자의 밑에 작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게 뭐지?
(책을 핍니다.)
책을 펴보면, 대체로 알아보기 힘든 언어가 잔뜩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간간히 당신이 아는 언어도 나오네요.
[모국어] 판정.

기준치: | 80/40/16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침침...)
(카론한테 주며) 뭐라고 써져있는거냐.

그리고는 어느 한 부분을 짚어 줍니다.
...당신의 이름입니다.

(망자의 이름들에 자기 이름이 있는 것을 보자니,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았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미 죽었음에도 칼에 찔렸던 부위가 시큰하게 아려왔다.)
(제 가슴깨를 손으로 붙잡고는 이제는 저리 치우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지키지 못한 마지막을 궁금해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지만.
...예. 그렇습니다.

뭐, 대충 예상하고 있지 않나?
백성들과 부하들의 원한을 산 왕의 마지막은 어떻게 장식될지.
순찰따위 안가도 좋다고 했는데, 기어코 나를 마을로 내려 보냈지. 나는 너무나도 큰 노여움을 사고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미소라도 보여주고 오라고.
거의 강제로 끌려나오다 싶이 나와서 말을 타고 순찰하는 중에, 내 뒤를 지키고 있던 무사가 나를 찔렀고, 주변에 있던 다른 백성들도 옳다구나 달려들었지.

(잔인한 일이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거기까지인 신하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신하를 둔 당신도 참 안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역시,) ...잔인한 일이군요.
...이리 되리란걸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심드렁하게 말을 넘기곤) 그런 마지막을 느끼면서 네 생각이 나는건 어쩔 수가 없더구나.


네가 옆에 있었더라면 나는 이곳에 아직 안왔을지도 모르지.

아직, 살고 싶으십니까.

여기서 끝내면 됐어.


후회는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거야.
(정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많이 쉰 것 같으니, 다시 움직이지.
다시 움직이자며 일어서자, 저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처음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궁궐의 대문 같은 나무 문입니다.




...아니라면 됐습니다. (다시 몸을 돌렸다)

카론을 따라 대문 앞에 도착하면, 카론은 손을 내밀어 간단히 문을 엽니다.
케르, [정신력] 판정

기준치: | 45/22/9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여기서 끝내면 됐다고, 그렇게 말한 것이 무색하게 아직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순적이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버립니다.
이런 자신에게 무슨 생각이 드나요?

(그렇군요...)

(살아봤자, 좋은 일들도 보지 못할텐데 말인데도.)


문을 나서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저승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석산화 꽃밭]
석산화, 다른 이름으로는 피안화. 이 피안화가 핀 장소는 아까보다 훨씬 더 아, 저승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발치에는 잔디와 무수히 많은 꽃들이 스치지만 돌길이 나 있는게, 꼭 폐허가 되어 자연에 침식 당한 당신의 궁전을 마주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방에는 무너진 건축물과 나무가 존재합니다.
버드 나무 끝에는 시냇물이 졸졸졸. 물 아래에는 송사리들이 춤 추듯 돌아다니고, 옆에는 커다란 책장들이 드문 드문 놓여 있습니다.
책장을 보면 어디까지 솟아난 건지 모를 정도로 높기만 합니다.
이걸 읽고 책을 빼낼 수 있는 사람들은 저승에서 일하는 이들이겠지요?





저승이나 지옥이나, 그게 그거지.


흥. 재미없는 것들이 널렸네. (아무거나 하나 빼봅니다)
카론의 말을 무시하고 책장에 다가갔습니다.

아무거나 하나 빼 펼쳐보면, 죽은 이들의 명부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적힌 책들인 듯합니다.
정자에서 보았던 그 책자가 생각나는군요.

너는 찾을 수 있지? 저승사자니까. (뒤돌아서 카론을 본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찾아.

카론은 슥 책장을 훑더니, 당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빼들어 건넵니다.

책을 펼쳐보면, 당신의 일생이 적혀 있습니다. 딱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미래'란은 비어 있습니다.

(다시 흥미를 잃은 듯 책을 덮었다.)



언제... 행복하셨습니까.



남들처럼 쫑알거리지도 않고, 내 자리를 넘보려지도 않는...
과묵한 너와 있을 땐, 마음이 편했다.

... .....그럼, 제가 없을 때는 어떠셨습니까.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저가 사라진 이후의 당신을 읽어 보았다. 어떤 생활을 보냈나? 잠은 잘 잤을까.)


... ..화는 많이 나셨겠습니다.

네 얘기는 언제쯤 해줄 생각이냐?




기준치: | 70/35/14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에게서 흘러나온 말은... '당신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명하게 들려 왔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똑바로 대답해.

당신에게 내가 위험했기 때문에.
... ...그래서입니다.

품어서 안될 마음이 무슨 마음이며, 그로 인해 내가 느낄 위험이 뭔지 당장 말하거라.

한가지 분명한 건, 그때의 전...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아까는 분명 내가 싫어서 도망친게 아니라고 답하지 않았나?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그래. 너라고 별다를게 없겠지. 나같은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걸지도 모를테니. 축하해, 너는 정상인이었나 모양이군.
(싸늘한 얼굴로 비소를 흘리곤 너를 툭 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그 무엇도 변명하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당신의 뒤를 따랐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한마디가 있다면...) 당신이 싫어서 도망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을 수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증오만으로 이루어진 칼날이라면, 이미 한 번 겪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묵묵히 길을 따라 걸으면, 발치에 무언가 툭. 하고 걸립니다.

이제는 익숙한 것이네요. 방금까지 읽었던 책자와 같은 종류입니다.
다른 것이라면... 그곳에 써있는 이름일까요.
[카론]
당신의 뒤에 있는 그의 이름입니다.

책을 들어 펼치면, 그곳엔 카론의 과거, 행방불명 되기 전의 일생이 적혀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곳곳에 보입니다. 잠든 당신의 옆에 밤새도록 서 있었다던가, 호위하다 어디를 다쳤다던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네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책자에는 혼란스러워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평소와 같이 잠든 당신의 곁에 서서, 칼을 빼들지 않기 위해 손바닥을 찢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네요.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불려 따라나갔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다시 내놓거라!!! (화냄)

(높은 책장에 꽂아버림..)

내놔!!!
기준치: | 90/45/18 |
굴림: | 9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보통성공이라 실패~)



... .....

왜 보지 못하게 하는건데.




(다시 홱 가버린다)

케르는 [지능]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카론의 이름이 적힌 책자는 조금 이상했던 것도 같습니다.
분명 당신보다 일찍 죽었을 터인데, 이상하게 두껍지 않았나요?
마치... 뒤에 무언가 더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을 걸 아니, 그저 걷기를 선택 했습니다.
걸으며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에 배신감이 드나요?

유일하게 곁을 주었던 사람에게 배신감이 느껴지니, 과거에 함께 했던 시간들도 모두 부질 없다 느껴지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은 가치 있었나요?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했기 때문에, 큰 배신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헛된 것은 아니지요.

이리 되었다면, 만약을 떠올리며 중얼거립니다.
그러자 꽃 향기를 담은 바람이 당신을 스치고 지나가네요.
바람은 당신의 머리칼을 스치고, 뒤에 있는 그의 옷자락에도 스칩니다.
하늘은 조금씩 빛이 흐릿해져 갑니다.
흔들리는 석산화가, 이곳이 저승이라는 것을 한번 더 상기시켜 줍니다.


체념한듯, 이제 어찌 되든 좋다는 듯 그렇게 꽃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음 장소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인듯,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문이 그곳에 있습니다.
문 안쪽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네요.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안들어)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민요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너머에는 마을이라도 있는 걸까요?

(노랫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턱짓하며) 저기로 가는게 맞느냐?


복잡할 표정의 카론을 두고, 당신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개나리 마을]
과연, 정말로 마을이 존재했습니다.
당연히 산 자들의 마을은 아니겠지요. 곳곳에는 형체를 보기 힘든 투명한 이들이 개나리 꽃 옆에서 웃음을 터트립니다.
모습이 없다지만 꺼림칙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담장 너머에는 기와집, 초가집이 존재합니다. 얼기설기 얽힌 짚단과 마루,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
앞으로 향하는 오솔길 바닥은 흙바닥, 빨래줄에 걸려있는 하얀색 이불보들.
옆에는 개나리, 개나리, 그리고 개나리.

아까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하늘은 어느 새 노을로 뒤덮였습니다.
붉은 자욱이 먹물처럼 번지고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어디선가 밥 짓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늙은 여인의 목소리. 하지만 힘 있고 꺾이는 듯한 소리입니다.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이곳은 너무도 평화롭습니다. 들려오는 노래조차 마음에 들지 않네요.
밥 짓는 연기와 구수한 냄새가 당신의 코를 간지럽히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진 않으십니까.


이제 다시 없을 일입니다.

카론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당신의 앞에 서서 걷습니다.
카론을 따라 마을 내부 커다란 기와집에 들어가면
마루 한 가운데에 기다렸다는 듯이 1인분의 밥상이 차려져 있네요.
생전에 당신이 즐겨 먹던 반찬들이 주를 이룹니다.




앞에 마주보고 앉거나, 옆에 앉던가 해.


분명 오랜만이 아닐 텐데도, 어쩐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맛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저승에 도착하면 이제 이런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 생각하니 어쩐지 착잡해집니다.
[정신력] 판정.

기준치: | 45/22/9 |
굴림: | 2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의 앞에 앉아 있는 카론과 음식의 맛,
살아있던 시절의 음식 맛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정말 이대로 죽어야만 할까요.



너는 살고 싶지 않았어?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대답해) 저라고 한들 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당신의 곁에서, 밥을 비우는 것을 보고...
침상을 지키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울컥하는 마음이 튀어나와 네게 달려들어 멱을 잡았다. 어쩐지 분노와 슬픔이 눈 앞을 아려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말해, 카론.

...거짓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저 역시 살고 싶었으나, 그보다 중한 것이 있기에 버렸을 뿐.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신다면, 그렇게 하시겠다면 모두 말하겠습니다.


... ..저도 그리 할터이니.

그러도록 하지.

두 사람이 다시 제대로 앉자, 카론은 손가락을 튕깁니다.
식기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꽃 차가 준비 되어 있네요.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고민하는 듯 보인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듯이... 당신이 너무도 미웠습니다.




일단 이어서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져... 곁에 있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도망가버리고 어디로 갔던거냐. 그런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건 아니겠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면... 당신에게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에 죽었겠지요.


그들은 제 이 감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감정을 없애 주겠노라, 방법을 알고 있노라 감언이설을 해댔고, 멍청한 저는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연못에 빠졌고, 그 곳에서... ... 저승의 신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궁금한 것이, 더 있으십니까.



네가 죽어서 저승사자가 되었고...
저승사자가 되면서 날 증오하는 마음은 사라진거냐?


아직 말하지 않은게 더 있는건 아니냐?
내게서 듣고싶은 진실의 답은 뭔지도 다 불도록 해. 아직도 이해가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자리를 옮기지요.

당신이 일어나기 무섭게, 다음 장소로 가는 문이 열립니다.
문 너머에서는 달빛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미간 찌푸리며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간다)
[붉은 연못]
문 안으로 들어서면 달빛이 비춥니다.
완연히 밤이 되어버린 이 장소에는 연못과 다리, 마지막 문이 존재합니다.
연못 위에는 붉은 연꽃이 가득합니다.
확실하게 이승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만큼 황홀한 모습입니다.
달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붉은 꽃이 유유히 연못 위에 떠 있습니다.
당신은 연못에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건, 너무 아름다워요.
생애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있을까요.
핏빛 같은 색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완전히 연꽃에 눈길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이 연못의 다리를 건너면,
당신은 확실하게 죽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관찰] 판정 가능

기준치: | 75/37/15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연못에 가까이 갈 수록, 사람의 이야기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옵니다.

"저 연못에 빠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걸세"
...그리고는 뒤이어,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놀라 연못을 바라보면, 역시나.
카론이 연못의 아래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 뒤를 돌아 카론이 있나 확인한다)
뒤를 돌아보면 카론은 그 자리에 서있을 뿐입니다.
붉은 연꽃을 응시하면서, 당신을 기다리면서.
...그리고는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연못 위에서 카론을 잡아먹을 듯이 구는 교활한 사람들. 그들이 말합니다.
"시체를 끌어올려. 제물로 바치자."
"이걸로 ■■■님을 위한 의식을 할 수 있을거야"
"■■■님이 우리들을 모두 구원할 것이야."
"미쳐버린 왕에게서 우리를 구해주실 것이야!!!"
희망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던 도중, 죽음에 다다른 카론에게 저승의 신이 나타납니다.
그가 카론을 살리고 기회를 주는 장면.
그 내용은.
그 내용은... ...

등 뒤에서 카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뒤 돌아서 카론을 본다.)
내가 저승으로 오면 네가 살 수 있다는 말이야?


(연못의 다리를 건너갈 태세를 취한다.)



계약을 받아들고, 이곳으로 오는 길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연못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이승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그저, 진실된 답을 들려 주십시오.
살고 싶습니까.

내가 살고싶다고 이승으로 돌아간다 한들, 똑같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 꼴이며, 네가 없는 하루하루를 또 다시 반복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같이 살자는 말이 아니면,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말아라.
(싸늘한 표정으로 답했다.)

살아서 당신을 바꿀 수 없었다면, 적어도 다시 살려놓는 짓만은 하지 말자.
...그리 생각 했던것은, 그들이 했던 의식의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곳까지 오면서, 어쩌면 죽음의 앞에서라면 당신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것은, 저의 착각입니까.
...제가 당신을 두 번 죽일 뻔하였습니까.
제가 그리 중한 인물이었습니까.

그리고 살고싶다는 너와 살고싶은거지, 혼자 사는건 의미 없어.
...너를 그만큼 소중히 아끼니까. 내 인생의 유일하게 믿은 사람이다.
너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그래... 나도 아직 너를 잘 모르니 같은거겠지.
나는 죄값을 치르러 저승으로 갈거고,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적어도 내가 살고싶다보단, 나 때문에 죽은 너를 살리자는 욕망이 더 클지도 모르지.

제 앞의 삶같은 건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역시 당신과 함께하는 삶만을 그리워 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살을 찢는듯한 증오심 속에서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났던 것임을 모르십니까.
...우리는 참 닮았습니다.
저 역시 혼자 사는 것에 의미는 없다 생각하니 말입니다.

제게도 죄가 없지 않습니다.

(조금은 차가운 손으로 네 손을 마주 잡으며) 네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하지마. 아까도 말했지만 후회하는건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것이니.

당신을 말리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당신에게서 떠난 것이 가장 후회스러웠습니다.


영원히, 함께 있어 주시겠습니까.

그래. 더이상 시간이란 것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 속에 네 곁에 있겠다고 약조하마.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네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다리 너머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반사적으로 깨닫습니다. 이제 정말로 죽음에 임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건너편으로 이끄는 카론의 모습은 정말로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다주는 길잡이 같습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풀어진 눈가가, 당신을 보는 눈동자가.
그가 말합니다.

...영원히 함께 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원을 약속하고 있으면, 그러라는 듯이 문 안쪽에서 환, 하게 빛이 납니다.
등불과 초롱, 반딧불이가 마구 유혹합니다.
여긴 행복할 거야, 행복할 거야 하고…….
달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자면 참 기분이 기묘합니다.
삶의 마지막에 임하게 되었음이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종착역을 봐요, 자, 저 문 너머에서 비춰지는 황금색 빛…….
이 문을 넘으면 생전의 모든 일을 잊을 겁니다.
모든 일을 잊고, 당신은 망자가 되어 다시 태어나거나 영원히 이곳에서,
영원히 이곳에서 붉은 연꽃과 함께.
연못에 비추는 달과 함께.
하지만 그 곁에 있는 카론은?


영원히 함께라는 게 가능할까요?
저승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을 꽉 쥐고 있노라면 아, 그는 잊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아, 우리는 이대로,
이대로 정말 함께겠구나.
그런 죽음이라면 꽤 행복하겠어요.
그런 죽음이라면.

문을 넘습니다. 빛이 당신을 감쌉니다. 황홀하게,
이 잔악한 아름다움.
끔찍한 황홀함이…….
[END 04. 노송]
[카론, 케르 카마엘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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